2021년 개인전 ‘내일을 살다’전 중에서 다섯 작품이다. ‘하루’와 ‘미러 스치다’는 김천일 작가의 자화상이다. 전철 승강장에 선 모습과 전철 안 유리에 비친 모습을 사진기로 찍은 모습이다. 두 작품 모두 녹색 색조가 특징인데 신선하고 평온하고 생명력 넘치는 색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하루의 작업을 마친 화가 노동자의 고단함과 대중교통에서 스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군중 속의 고독 등 칙칙한 퇴근의 맛이 버무려진 느낌이다.
벽화 작업을 하다가 담배를 피워 물고 담뱃불을 붙여주는 화가 두 명의 등 뒤로 ‘낮달’이 떠 있는 그림 역시 그림 그리기 노동의 화려하지 않은 세계를 보여준다.
‘세월 1’과 ‘세월 2’에는 친한 동료 화가를 담았다. ‘세월 1’은 동료 화가의 작업실에 놀러 가서, ‘세월 2’는 작가의 작업실에 놀러 온 동료를 그렸다. 한 짝은 뒤집힌 슬리퍼처럼 경비아저씨 자세로 앉아 있는 동료의 모습, 역시 맨발에 반바지로 안경마저 벗고 잠이 든 동료의 모습. 가진 게 많지 않고 남은 게 많지 않은, 희끗희끗한 머리로 남은 동료를 그린 그림은 또 다른 자화상이기도 하다.
동료가 다리를 올려놓고 잠든 탁자에 ‘보일락 할 때가 눈이 어두워질 때라 온몸으로 보거라 눈을 감어도 보일 때까지 - 백기완’이라 썼다. '길을 걷거나 다른 일을 하다가도 그림에 대한 화두가 뒷덜미를 잡는', 내일을 사는, 내일을 살아내는, 김천일 작가 자신에게 주는 적절한 경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