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
전지는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만들어지는 사건과 모양들에 관심이 많고, 시간이 켜켜이 쌓인 구도심 동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로 만화, 드로잉, 조형물을 만든다. 특히 곧 증발해 사라질 것 같은 일상의 존재들에 애정을 가지고 채집자의 시선으로 세심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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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2023.01.30 아르떼365 기고 원고 [굳이 하는 일들]
https://arte365.kr/?p=97580
“어떤 세계를 이렇게 재현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처음 해봤을 때,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풍경화에 대한 숙제가 있으면 ‘되게’ 신이 났던 것 같아요.” 
전지 작가는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 시간이 있는 날을 좋아했다. 눈이 내리는 장면을 그리면서 크레파스로 흰 눈을 칠하고 수채화로 덮으며 혼자 만들어 낸 비법이라고 만족해하던 것이 생생하다. 전지 작가를 그림의 세계로 이끈 건 이러한 ‘만족’과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 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되게 뿌듯해지는 마음 말이다.
“제가 뭔가 만들기 시작했던 것도 그때그때의 베프에게마다 항상 창작물을 만들어 줬던 게 시작이었어요.”
제일 처음 ‘친구에게 드린’ 작품은 집에 들어온 선물의 빈 상자에 그림과 종이접기를 넣은 뒤 랩으로 막아서 유리관처럼 만든 작품이었다.
“되게 한 명한테 애정을 좀 쏟는 편이었는데 시기에 따라서 꼭 ‘베프’가 있는 스타일이었어요.”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정도가 아니라, 친구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따라서 그만두고 싶은 정도였다. 친구가 좋아하는 힙합 스타일을 같이 입다가 쫄티를 입어본 것도 큰 용기였고, 친구 따라 음악 학원에 다니다가 미술이 하고 싶어져서 진로를 변경한 것도 큰 결심이었다. 
친구라는 존재는 전지 작가의 헌상 창작욕을 북돋는 존재이자 정작 전지 작가가 좋아하는 것을 억압하며 ‘강하게 푸시하는’ 양면의 존재이기도 한 셈이다. 내가 재밌고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하는 일로의 한 발 한 발은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마음으로 ‘되게 좋아하는 친구’를 객관적인 거리로 한 발 떨어뜨려 놓는 노력이기도 하다. 

전지 작가에게 이렇듯 한 발 떨어뜨려 놓는 작업은 중요하다. ‘우리 엄마를 괴롭혔다는 생각에 이제 엄마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미워했던 할머니도 전지 작가가 결혼해서 엄마와 떨어져 살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또 엄마에 관한 책을 쓰면서 다시 돌아보게 됐다. 
“처음에 이 단면만 이렇게 만약에 봤다면 좀 이쪽 면도 보고 저쪽 면도 보면서 좀 이렇게 떨어뜨려 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지 작가의 ‘한 발 떨어뜨리기’는 결국 인물과 사물의 종합적인 성찰이다.
“몰입해서 좋아하는 것 같아요. 빠져들고, 나 자신을 막 다 바치고 던져서 좋아하고, 친구한테도 엄마한테도.”
“작업도 뭔가 독파한다거나 충분히 내가 얘를 이해했다, 그리고 충분히 내가 구현할 수 있는 걸로 구현했다, 얘는 이렇게 내가 충분히 만지작거리고 다 가지고 놀았다는 생각이 들면 내려놓고 또 다른 걸 찾는 것 같아요.” 
“시기별로 사람 좋아하는 것처럼 작업도 이 카테고리가 변하면서 하나씩 제가 몰입하는 시기가 있더라고요.”
무언가에 잘 빠지는 전지 작가는 시기별로 사람에도 작업에도 푸욱 빠져서 충분히 몰입하고 한 발 떨어뜨리기를 하면서 성장의 이동을 해온 셈이다. 

“저희 언니가 사춘기를 너무 세게 보내서 제가 사춘기를 보낼 틈이 없었어요.”
“갑자기 그때 다리를 좀 뻗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젠 나도 좀 다리를 뻗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는 약간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센 언니’의 출가와 친구와의 결별의 틈이 있던 20대 후반에야 전지 작가는 숨통 틔듯 사춘기를 맞았다. ‘정말 마음 가는 대로 막 하고, 말실수를 엄청 막 하고, 책도 많이 보고, 작업도 막 이것저것 해보는’ 시간이었다. 막 충돌하고, 막 실험하고, 막 모난 돌처럼 굴면서 막 시비 걸고, 막 싸우는 걸 ‘정말 이상한 애처럼’ 원 없이 해보았다. ‘엄마 아빠를 잘 헤아려 주고 그랬던 쓰임 많았던 애가’ 하고 싶은 것을 폭포수처럼 쏟아부은 3년의 변신 끝에 폭포수 아래 득음을 한, 지금의 전지 작가가 있다. 어찌 보면 ‘지랄 총량의 법칙’ 구현이다.
“그러다가 제가 종범 씨를 만나면서 제가 좀 차분해졌어요. 전처럼 화날 일이 적어졌고 서로 조곤조곤 얘기하고 그러면서 몸의 힘이 빠졌던 것 같아요. 좋은 쪽으로.”
나를 화나게 하지 않는 사람과 서른둘에 만나 서른셋에 결혼했고, 이젠 종범 씨를 모형으로 만드는 걸 즐긴다. 
“친구들에 대한 그런 애정이 너무 크면 또 그만큼 제가 조절이 안 돼서 힘을 줬었어요. 나는 이렇게 크게 표현했는데 그만큼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화가 날 때도 있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젠 마음의 어떤 부분이 좀 채워진 것 같아요.”

전지 작가는 몰입하기 / 한 발 떨어뜨리기에 걸쳐 있으면서 긴장하지 않고 편안해지는 것을 내내 과제로 삼고 있다. 잘 보이려 긴장하고, 인정받으려 긴장하며, 나를 입증해 내야 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주는 존재가 주는 안정감을 찾았다. 쏟아붓고는 보상받고 싶어 하던 마음을 많이 내려놓고 많이 편안해질 수 있었다.  
재개발의 광풍 속에 사라져 가는 것을 붙들고, 기록해 남기고, 기억하려는 예술가로 채집가이기도 한 전지 작가의 채집 목록에 편안함을 주는 남성이라는 희귀 생명체도 넣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 계속 생각나는 것들을 메모장에다가 써놓고 있거든요. 하고 싶은 작업을 되게 많이 써놨어요. 어떤 이야기를 담지, 만화는 스토리니까 그래서 어떤 걸 하지,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을 메모장에다 이렇게 이제 메모하고 있거든요.”
마음 쪼그라들지 않도록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두 사람과 두 사람의 작업. ‘너무’ 기대되며 ‘되게’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