웁쓰양
웁쓰양은 불안과 우울 등 물리적으로 느낀 것을 신체적으로 드러내되 초현실적인 상상에 유머를 섞어 재탄생시킨다. 작가의 그림은 노골적이고, 직접적이며, 돌려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후련해하고 위로받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현대미술은 이러해야 한다는 외부의 문법을 경계할 줄 알고, 어느 정도 벗어날 힘이 생겼다. ‘휘둘리지 않을 힘. 그러면서 어느 순간 되게 나다운 걸 막 자유롭게 꺼내는 것을 할 수 있는 그런’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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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나, 익숙한 타인’전에서 웁쓰양의 ‘무료한 날’이란 작품 한 점을 사 왔다. 앞머리에 헤어롤 하나 말고 있는 거 외 다 벗은 살덩이 여성이 정면으로 쪼그려 앉아서 오줌을 누는 그림인데 호쾌하고 통쾌한 느낌이다. 여성이 벗은 엉덩이를 손으로 살짝 끌어 올려서 성기가 보일 듯한 그림의 제목도 ‘자화상’인 것처럼 당당하기 그지없다. 전시회에 동행한 점원 쏜도 자유롭게 활갯짓하는 여성이 느껴진다고 했다. 묘한 귀여움과 유머가 배어있어 사고 싶은 마음을 동하게 한다고 했다.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라는 영화에서 늘어진 가슴, 출렁이는 배, 굵은 넓적다리의 나이 든 여배우가 전라의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서서 행복한 표정으로 자위행위를 하는 ‘해피엔딩’이 떠오르는 그림들. ‘나를 인정하는 게 뭐가 어려워?’ ‘내 안의 동물성이 뭐가 이상해?’ 되묻는, 대범하고 신선한 그림들이었다.
“여성들이 여성의 육체를 그릴 때는 더 적나라하게 그리는데, 남성 화가가 여성의 육체를 그릴 때는 약간 미화하거나 신격화하거나 약간 그런 식으로 그리는 경향이 있잖아요.”
웁쓰양의 그림은 노골적이고, 직접적이며, 돌려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후련해하고 위로받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웁쓰양은 사춘기부터 스무 살 무렵까지 외계인의 딴딴한 안테나를 달고 살았다. 
“정신병리학적으로는 자폐성 우울증이라고 하더라고요. 현실이 나한테 너무 버겁고 힘드니까 소위 말하면 자기 방을 만들어 자기 세계를 만들어서 그 안에 그냥 숨어버리는 거예요. 회피하는 거죠.” 
“자매님들이 욕하고 싸우고 문제 일으킬 때 난 그저 착한 둘째 딸이었죠. 언니와 여동생이 미쳐 날뛰는 사춘기 그 호르몬 빵빵한 애들의 모든 것을 동물적으로 다 해소하는 과정을 건강하게 거칠 때 난 그렇지 못한 거죠.”웁쓰양이 외계인으로 살았던 시간은 오늘의 두 가지 특이점으로 이어진다. 
“한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오롯이 가져야 할 때 현실성 없이 있다 보니 현실감이 굉장히 떨어져요.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무모한 짓을 잘 벌여요.”
“외계인 시절 지구인들 관찰 일기를 많이 쓰고 관찰을 되게 많이 했잖아요. 타인을 되게 과도하게 이해하려는 습성이 있어요.”
‘똥인지 된장인지 현실 구분을 못하고 리스크에 대해 머리를 쓰거나 계산을 잘 안 하는 편’이다. 상대에게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며 남의 감정과 입장만 고려하다가 자기감정을 등한시하기도 한다. 당당하면서도 따스한 웁쓰양은 어쩌면 자신의 그림에서 철철 눈물 흘리는 여성과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웁쓰양의 현재 카톡 프로필 사진은 최초의 인류로 알려진 원시인 루시다. 웁쓰양은 삶의 불안도와 긴장도가 높은데 ‘아침에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계속 긴장하는 상태’라는 걸 인지하고 원시성에 관심이 갔다. 사냥하고 적을 경계하며 살아가던 원시 사회에서는 굉장한 긴장감 속에 살았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시대를 잘못 태어난 거네, 이 시대에 안 맞을 뿐 난 문제가 없어, 라는 결론과 그 시대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프사로 루시를 택한 이유였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도 저 사람을 원시 시대로 돌려놓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보곤 한다. 징검다리 미술가게 선물방의 드로잉작에 초원 고릴라로 등장하는 주인공도 ‘세상 점잖은 사람’인데 일부러 그렇게 그려본 거였다.

“육체를 굉장히 과장하거나 비틀거나 그런 식의 드로잉을 되게 많이 하거든요. 몸을 엄청 막 이렇게 구겼다가 폈다가 늘렸다가 이렇게 접었다 저렇게 접었다 하거든요. 그게 다 감정을 그린 건데 저는 감정을 굉장히 신체적으로 느끼는 사람인 것 같아요.”
“이미 다 내가 느꼈는데 그거를 굳이 굳이 다 더 막 이렇게 드러내는 건 저한테 별로 매력이 없고 어떤 현실 안에서 감각적으로 느껴지게 표현하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본인이 불안과 우울 등 물리적으로 느낀 것을 신체적으로 드러내되 기본 성격이 명랑하기에 초현실적인 상상에 유머를 섞어 재탄생시키는 거였다.

“이렇게 재미없게 그리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좋아하길 바래? 너 되게 기만적이다. 그래서 저한테서 그림을 뺏었어요.”
10년 전 웁쓰양은 그림 그리길 그만둔 적이 있다. 작가로 4~5년 활동하던 때였다. 내 그림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할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걸 느끼고 그림의 재미가 사라져서였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예술의 정형을 벗어나서 하고 싶은 대로 야외 활동을 했다. ‘멍때리기 대회’의 창시자로 관련 책도 두 권이나 펴냈고, 작가로 정체성도 단단해지는 시기였다. 하지만 2021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야외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당시 우울감을 일기 쓰듯 드로잉 작업으로 풀었고 결국은 페인팅까지 하게 됐다. 

참여한 전시에 페인팅 2점과 드로잉 열몇 점을 걸었는데 ‘팔렸어, 팔렸어. / 왜 팔려? / 몰라. 막 나가, 팔렸어’ 카톡을 주고받는 사이 작품은 거의 다 팔렸다. 팔리는 그림을 그리려던 노력을 놓고 8~9년 멀리하는 사이 오히려 ‘너무 과하게 보이거나 너무 숨기지 않는 어떤 감정을 선명하게 보여주어’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작가가 됐다.
“자빠져도 일어나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신나게 그냥 이렇게 놀았고 그 과정 안에서 저도 모르는 어떤 정체성이 이렇게 세워졌나 그런 것 같아요.”겁이 없어졌고, 현대미술은 이러해야 한다는 외부의 문법을 경계할 줄 알고, 어느 정도 벗어날 힘이 생겼다. ‘휘둘리지 않을 힘. 그러면서 어느 순간 되게 나다운 걸 막 자유롭게 꺼내는 것을 할 수 있는 그런’ 힘이었다.

웁쓰양은 ‘드로잉 해방 클럽’이라는 워크숍도 한번 해보고 싶어 한다. 감정을 여과 없이 어떻게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는지 묻는 질문자들과 인간 안의 동물성을 거부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반듯한’ 사람을 위한 교실이다. 웁쓰양 팔뚝에 그려진, ‘인생의 파도를 타고 노는 웁쓰양’ 타투처럼 인생의 파도를 타고 노는 해방 클럽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