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혜
정은혜는 그림을 따로 배운 적이 없다.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방문자의 얼굴을 그려주면서 탄탄하게 실력을 쌓았다. 지금까지 4,500명 가량의 ‘니 얼굴’을 그렸다. 아기 손님들, 어린이, 개, 고양이, 장애인, 가족 커플 등 다양한 얼굴을 만났다. 작가는 춤을 따로 배운 적이 없는데도 덩실덩실 흔들흔들 흥 가득 ‘춤꾼’인 모습과도 닮았다. 인위적이거나 의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자연스럽게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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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의 아름다움, 바로 은혜 작가다

“좋아하는 음식은 뭐예요?”
“음식 다 좋아해요. 가리지 못해요. 안 가려요.”
“사람은 누가 좋아요?”
“그냥 사람들, 팬들. 싫은 건 없어요.”
사람들은 예쁘게 그려 달라고 하지만 은혜 작가의 답은 하나다. “예쁜 사람, 안 예쁜 사람 따로 있어요? 없어요~”
은혜 작가 곁 엄마, 장차현실 님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했더니 엄마의 힘든 점으로 ‘너무 바쁘고, 나이가 있으니까 노안’이란 점을 꼽는다. ‘멋진 엄마, 훌륭한 엄마, 씩씩한 엄마’라며 3종 칭찬을 하면서도 ‘잔머리 잘 쓰는 엄마’라고 덧붙이는 데서 은혜 작가의 솔직함이 묻어난다. “두 모녀가 닮았어요” 화가 날 때가 별로 없는데 엄마가 화가 나면 같이 화가 난다는, ‘감정 일체’의 은혜 작가다.
 
그이의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
“저 혼자 그림 그리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여럿이 그림 그리면서 행복하죠, 즐겁고.”
“동료들이랑 그림 그리면서 점심 먹거나 그림 그리면서 돈도 벌고 투쟁하고 행복하죠.”
투쟁이라... 천진난만 은혜 작가를 처음 만난 곳은 사실 투쟁의 현장이었다. 김진숙 동지 복직 촉구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청와대 광장에서였다. 흰 눈이 펑펑 나리되 낭만적이지 않은, 엄혹하고도 맹렬한 추위 속에서였다. 우산으로 머리나 살짝 가려졌을까, 산바람을 맞아가며 농성자를 그리는 사이 차가운 눈발은 간간이 털어내도 그이의 어깨며 다리며 발에 금세 소복 쌓일 정도였다. 두터운 장갑을 끼고도 손가락이 시린 날씨에 맨 손가락으로 연필 꼭 쥐고 농성자를 응시하던, 차가운 대기 속 푸르게 변한 얼굴에서도 빛나던 그이의 눈빛을 기억한다. 잘 웃고 언제나 낙천적이면서도 깊은 내공이 있는 면모를 얼핏 엿보았다고나 할까.
“언제 힘들다고 느껴요?”
“안 힘들어요. 없어요.”
늘 앉아 그림을 그리느라 엉덩이에 종기가 날 정도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한 항상 행복할 은혜 작가다.
 
“옥 발찌는 왜 했어요?”
“통증이 없어지라고요.”
“다리는 왜 저려요?”
“척추 문제가 있어요. 디스크 증상. 선천적으로 5번이 없어요.”
스스로를 다운증후군이고 발달장애 2급이라 말하는 순간에도 은혜 작가는 해맑다.
“걱정 있어요?”
“걱정 없어요. 엄마가 늘 걱정하지, 그게 탈이지.”
문제가 있어도 문제 삼지 않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이 해맑음의 비법이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영희 이후로 인터뷰며 강의, 강연으로 부쩍 바빠졌다. 사람들이 알아보고 찾고 좋아하는 유명인이 됐다. 길 가다가 사인도 하고 같이 사진을 찍는 일도 일상이다. 해외 초청 전시도 줄을 잇는다.
“즐거워요?”
“익숙해요.”
잘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넘어서기 어렵다고 했는데, 독특한 자기 세계를 구축한 화가면서 그림 그리기 자체, 삶 자체를 온전히 즐기는 은혜 작가다.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방문자의 얼굴을 그려주면서 탄탄하게 실력을 쌓아온 은혜 작가. “그때는 2,000명 정도고 지금까지는 4,500명” 가량의 ‘니 얼굴’을 그렸다. 아기 손님들, 어린이, 개, 고양이, 장애인, 가족 커플 등 다양한 얼굴을 만났다. “그 손님들은 제가 그림 그려준 걸로 저를 생각해요. 저를 보고 싶어 하죠. 저도 그래요.” 그림의 주인공들은 그림을 보면서 그려준 이를 떠올릴 텐데 은혜 작가 역시 그린 이들을 추억한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은혜 작가의 따스한 가슴에 있기 때문이다. 그 하나하나로 오롯이 남은 다정함이 바로 은혜 작가의 자산일 것이다. 사람에게 에너지를 받고, 사람에게 에너지를 주는 사람,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은혜 작가다.
 
은혜 작가는 원하는 거, 바라는 것도 없다. 어떤 행사 소원지에 다른 작가가 “은혜 씨, 화가 되세요~”라고 써줬는데 화가라는 꿈을 이미 이뤘기 때문이다. 가장 맘에 드는 그림으론 재상봉의 반가움을 흠뻑 담은 ‘마린과 나’를 꼽는데, 마음에 안 드는 그림은 없다. ‘역시나’ 흑백 작품도 컬러 작품도 “둘 다 다 좋아요”다. 해서 그동안 그려 놓은 것 중 버린 그림도 없다. 오히려 그린 사람을 스캔해서 연필 자국 위에 다시 그리는 ‘리사이클’ 작업까지 하고 있다. 인물화와 개와 고양이 그림을 넘어 거리의 사계와 풍경화까지 그림의 폭도 넓고 다양해지고 있다.
은혜 작가는 그림을 따로 배운 적이 없다. 춤을 따로 배운 적이 없는데도 덩실덩실 흔들흔들 흥 가득 ‘춤꾼’인 모습과도 닮았다. 인위적이거나 의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자연스럽게 표출한다. 장차현실 님의 한마디.
“배우면 저런 그림이 안 나왔겠죠. 평범한 그림이 나왔겠죠. 그리고 괴로워하고 있겠죠.”
2013년 잡지의 향수 광고 모델을 보고 그린 그림이 첫 작품이고, 그때부터 남다른 자기 화법이 ‘이미’ 있었다. 우리는 무언가를 창작하기 이전에 ‘창작의 고통’이란 말부터 배우는데, 창작의 즐거움만 넘실대는 그림, 금방 그려지는 그림을 자유자재로 그리는 화가가 바로 은혜 작가이고 그이의 삶 역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