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김민희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9월부터 계약해서 사용하는, ‘첫’ 작업실이었다. 김 작가를 처음 만난 곳이 ‘경력 단절’ 이후 ‘첫’ 개인전에서였으니 여러모로 그이의 처음을 접한 셈이다. 북한산 공원 근처 작업실은 넓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그 정점은 창이었다. “밖에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넘쳐요. 거기만 봐도 아쉬운 게 없어요.” 길을 걸어 다니면서도 색과 형태에 민감하고 감각적이고 시각적인 사람, 김 작가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었다.
김 작가는 특정 주제를 가지고 작업하지 않는다. 주변에 있는 것들, 보는 것들, 눈에 밟히는 아이들이 소재다. 무얼 그려야지 하는 생각보다 이걸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다.
“늘 헤매죠. 사람 마음이 그렇듯 늘 바뀌고 힘들고. 그래도 잡아나가는 게 중요하죠.”
그때그때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과 경험을 따라가며 그리다 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 나오곤 한다.
“따라가면 그 안에서 삶의 형태 등 ‘나라는 사람’이 나오는 거죠. 성찰의 계기가 되기도 해요.”
“그 자체 모습만이 아니라 그 안에 투영되는 것, 발견되는 것이 있어요.”
형상화된 결과물을 보면, 그리다가 달라진 걸 느낀다. ‘그리고 싶었던 다른 게 있었구나’ 싶은, 몰랐던 부분이 나타날 때가 있다. 색과 형태가 인상적이어서 무작정 그리고 싶었는데 그리다 보니 집 형태가 어릴 적 살았던 집을 닮아간달지 하는 식이다. 의도와 상관없이 담기고 반영되는 과정이 재밌고, 결과는 성찰과 더불어 기억에 남으니, 모든 작업이 소중하고 모든 작품에 애착이 있다. 회화 전시물도 시간의 경과 속에 쌓인 결과물을 모아 놓았을 때 ‘이런 걸 보여주고 싶었구나’ 비로소 깨닫게 되기도 해서 전시 제목 역시 늦게 정하곤 한다.
그렇게 엄마가 된다, 그렇게 작가가 된다
김 작가는 자녀들과 놀아주는 게 아니라 ‘같이 애들처럼 논다.’ 다행히도 육아를 굴레로 느끼지 않고, ‘무한정 연장할 수 있다면 계속하고 싶은’ 놀이로 가져가고 있다. ‘아이도 나이 들지 않고, 나도 나이 들지 않고 그 시간에 살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우리는 좋았던 경험으로 부모처럼 살고 싶어 하거나, 좋지 않았던 기억으로 부모와 정반대로 살고자 한다. 지금 김 작가에게 있어 가정은 치유의 공간이요, 육아는 힐링의 시간이다. 바로 ‘현재 살고 있는 시간’이 ‘그림자가 없는 시간’이다.
남편은 ‘허세도 욕심도 없이 천상 좋은 사람’이다. ‘감정 기복 심한 사람은 나 하나로 족하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무덤덤하되 한결같아서 평온하기 그지없다.
“바람 부는 나무 곁에서도 저러고 있는 사람이예요.”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채우고, 넘쳤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덜어내며 행복으로 함께 가는 여정. 같이 뛰어놀고, 생각 없이 놀고, 따듯한 느낌 안에서 놀고, 본연의 모습으로 함께 놀고 있는 지금의 시간 속에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린다. 삶은 작업에 반영되고, 작업은 삶을 꾸려 나가는 방식이 된다. 그동안 풍경을 많이 그렸는데 근접 작업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인물 작업의 구상도 하고 있다. 크게 알아주지 않아도 내 갈 길을 갈 뿐이니 부유하지 않아도 풍족하고 충만할 따름이다. 어둠을 빛으로 승화시켜 말갛게 닦아낸 느낌. 김 작가와 그이 그림의 느낌이다.
아이들과 숲에서 같이 놀아서 숲 그림이 많다는 김 작가. 김 작가에게 숲과 산과 계곡은 유년기에 ‘그나마’ 마음이 편하고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왜 좋았는지 몰랐는데 그리면서 알게 된 거였다. 멀리서 보면 중학생으로 착각하기도 하는 김 작가 동안의 비결. 노화의 길을 따라 걷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성장의 길, 숲으로 난 길을 걷기 때문은 아닐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