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엽
정정엽은 다양한 작품 세계 속에 예술적 실천을 구현한다. ‘두렁’, ‘갯꽃’, ‘여성미술연구회’, ‘입김’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한 바 있다. 붉은 팥과 여러 곡식은 물론 다양한 동식물과 벌레를 통해 응집된 생명력을 담아낸다. 여성의 삶과 여성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보여주는 작업도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변주와 성장을 추구하되 첫 개인전 제목이던 ‘생명을 아우르는 살림’이란 화두를 놓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
한끝의 자유로움

“한 번은 머릴 밀어봤어. 짧게 자르는 게 어울려서 그냥 밀어보면 어떨까 하고. 어느 날 자르고 나니까 더 이상 긴 머리를 못 하겠더라고.” 산책하다가 동네 할머니한테 혼난 적도 있다며 밝게 웃는 정정엽 선생. 그 얘기에 그이답다는 생각을 했다. 태어난 성이 단순히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여성임을 자각하고 함께 걷는 여성이길 선택한 여성. 그 길을 한치 벗어남 없이, 타협이나 굽힘도 없이, 꼿꼿하고 당당하게 또 치열하게 하지만 무겁지 않게 걸어가는 여성. 억압에 더없이 자유롭고 유쾌하게 저항하는 여성 화가가 정정엽이니 말이다.

2020년 작인 ‘빗길’의 여성들이 떠오른다. 빗속에 우비를 입고 걸어가는 네 여자는 같이. 나란히. 걷는다. 인물은 비바람에 옷을 여미는 동작마저도 춤동작같이 발랄하고, 배경은 안개가 낀 것처럼 생략했다. 여성들은 주변이 하나도 안 보이는, 알 수 없는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길을 떠난다. 예기치 않게 닥쳐오는 상황을 정면으로 맞이해 대처한다. 악착같이 헤치고 걸어가지만 힘겨워 보이지 않고 오히려 활달하고 즐겁게만 보인다. 그 길 위에, 그 여성들 사이에 정정엽이 있다.

한 번 밀어본 머리를 두고 어느 평론가는 ‘자른 머리가 아니라 깎인 머린데요.’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정 선생의 두려움 없는 머리 얘기를 조금 더 해본다면 꿈이 미용사인 건넛마을 동네 아줌마에게 머리를 내어 맡긴 일화를 소개할 수 있겠다. “내 머리로 실험을 해봐.” 아줌마는 공짜로 연습할 수 있어서, 정 선생은 공짜로 자를 수 있어서, 서로 참 용감하다 격려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집세를 갚기 전엔 미장원에도 안 간다.’는 철저한 다짐대로 7~8년 미장원에 가지도 않고, 꼭 필요한 소비만 하며 집세를 갚고, 하여 지금 안성 작업실의 주인은 정 선생이라는 이야기다.

정 선생은 ‘내가 죽어야 끝나는 소비’를 생각하며 플라스틱병을 모아보기도 했다. “난 마트도 한 달에 두 번 가는데... 너무 놀랐어.” 그중 술병이 제일 많다는 자각도 했지만, 한 사람이 쓰는 플라스틱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동료 5명과 1달 모은 플라스틱으로 기획전을 열기도 했다. 다른 전시에선 환경이 파괴되며 멸종하는 동물과 환경이 열악해서 위기에 처한 여성을 같이 등장시키기도 하고, 어머니의 죽음과 지구의 위기가 잇닿아 있다는 느낌을 전하기도 했다. 

정 선생은 한 해 전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인터뷰어가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개인전을 마치면 어디로 갈지 저도 지켜보고 있습니다.”라 답했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어디로 구를지 모를 콩이 바로 정 선생이다. 여성으로서의 깊은 시선이 생명을 아우르며 사회 전반으로 열려 펼쳐져 있기 때문이고, 표현의 방식 역시 다양하고도 다채로운 까닭이다. 이미지는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뽑아 올리되 그리는 과정은 씨앗이 콩으로 열리고, 콩이 메주가 되고, 메주가 된장이 되도록 오래도록 이다.

2021년 그린 ‘죽은 새와 함께’는 여행하다가 바닷가에 떠밀려온 새를 보고 애도한 작품이다. 날아가야 하는데 바닷가에 쓰러져 있는 생명체를 화가가 되살리는 방법은 그려서 애도하는 것이었다. 사진을 찍고, 한참 동안 걸어놓고,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죽은 새를 홀로 그리고 싶지 않아 많은 것을 상상해 보았지만 어떤 것도 탁 꽂히지 않았다. 어느 날 산에 오르다 중턱쯤 숲속에서 무방비로 완전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성을 보았다. 어떤 것도 의식하지 않고 방기된 편안한 자유로움으로 누워있었다. 현실 속 상투적이지 않은 여성이 새와 함께 누워있는 그림은 그렇게 탄생했다. 우리는 같이 누워주는 것밖에 할 수 없지만, 그 여성이 그 새 옆에 누워 가장 잘 위로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길을 찾는 그림, 길들여지지 않는 삶’ 2014년 개인전 제목에 반영한 대로 정 선생의 그림은 길을 찾는 그림이요, 정 선생의 삶은 길들지 않는 삶이다. 최근 작품은 여성의 정서와 여성의 연대를 주제로 서사가 있고 노동이 있는 풍경을 담고 있다. 그이의 콩 그림 작업처럼 씨앗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이야기가 피어오른다. 정 선생은 공허한 형식미를 추구하지 않는다. ‘자동기술’로 정직하게 그리며 그것의 흐름을 따라가다 터뜨리는 방식이다. 내가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지 충실함 속에서 그림이 가질 수 있는 형식의 즐거움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이는 아름답거나 긍정적인, 틀에 박힌 결말을 우려하며, 쉽지는 않지만 ‘한끝의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완성도지. 잘하면 괜찮고, 못하면 촌스러운.” 작업실에서 접한 그림들에 캔버스 옆면까지 색을 칠해놓은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었다. 치밀하되 한끝의 자유로움이 배어있는 역작을 둘러보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 역시 완성도가 뒤지지 않았다. 세상 불공평하게 그림과 글과 말이 모두 되는 사람이 정 선생이었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끝의 자유로움이 바로 정 선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