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태 _ 작가
걷다가도 나에게 묻습니다. 궁극적으로 어떤 그림 그리기를 원하는가? 또는 주변 사람들이, 작가들이, 비평가들이 나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작업이 어떻게 보이길 원하는가? 나는 되뇌어 대답합니다. “텔레비전에 우리 엄마가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예전 어린이 동요 말처럼, 우리 일상의 모습이 고루고루 애틋하게, 신나게, 때론 슬프게 담겨 있는 그림이 우리들의 일터에, 살림집 벽에 걸렸으면 합니다. 그런 그림들이 일하는 대중의 문화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라디오에서는, 프랑스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는 부모 두 분 다 석공이었고, 그 자신도 보불 전쟁에 참가했음에도 오직 ‘아름다운 그림’만 그렸다고 나를 유혹합니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어느 시대에나 문화도 사상 투쟁의 일부입니다. 죽어라 일해서 ‘루이뷔통’을 사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힘써 일한 대가로 올바른 소비까지 선택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옳은 것이 아닐까요. 그러기에 우리 사회는 너무 불필요한 상품의 유혹이 많습니다. 그림 시장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런 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권유하는 ‘징검다리 미술가게’의 역할이 힘을 발휘하리라 생각됩니다.
한상균 _ 전)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
따뜻한 나눔과 든든한 연대 공간이 될, ‘징검다리 미술가게’에 동지들을 초대합니다. 뚜벅뚜벅 새 길을 내고 있는 권리찾기유니온, 문화연대, 작가 동지들의 소중한 마음이 더 많은 노동자와 일상에서 만나려 합니다. 넓은 공동체를 지향하는 튼실한 연대로, 노동자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 되는 날을 앞당기는 다양한 상상력의 산실을 열고자 합니다.
노동운동이 힘들 때마다 연대해준 문화예술 동지들에게 '징검다리 미술가게'가 노동자의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나눔 장터로 자리 잡길 바랍니다. 걸게 그림, 몸짓, 노래로 연대하며 투쟁의 선봉을 자청해온 문화예술 노동자들은 민중에게 언제나 큰 힘이고 뒷심이었습니다. 연대 투쟁 저항 나눔 변혁 통일 평화 기후 평등 인권의 가치를 담은 수많은 작품들이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공간에 함께하는 현장 문화가 생겨나길 바랍니다. 한국 사회는 비정규직 1100만이 넘는 세상, 근로기준법에서조차 배제된 노동자가 1000만이 넘는 중간착취의 세상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함께 바꿔내야 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나눔의 장이자 연대의 장이 될 '징검다리 미술가게'에 장차 한국 사회 근본을 바꿔낼 힘이 모아지길 바랍니다.
가짜 진보, 가짜 보수가 판치는 최악의 대선에선 불평등 사회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대안이 없습니다. 그들 모두 견제되지 않는 자유 시장 경제체제를 신봉하는 기득권 집단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노동자 민중을 성장과 경쟁이라는 전쟁터에 몰아넣어 지독한 불평등 세상을 만들었건만 이에 대한 저항을 확산하지 못해 답답합니다. 결과는 참담합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이전보다 더 지독한 신분사회가 되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부자와 빈자, 너 나 할 것 없이 능력주의를 공정하다고 생각하기에 연대와 저항이 약화하고 있다는 진단에 저 자신부터 반성합니다. 달리 왕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닌 하겠다는 집요한 실천만이 왕도일 것입니다. 인간답게 살고자 진화해온 저항의 DNA가 보편적 권리에서조차 배제되어 차별받는 노동자 민중의 가슴에 불을 지필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1894년 갑오년 집강소를 설치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던 이 땅의 민중을 생각합니다. 대물림된 노비문서를 불사르고 인간해방을 쟁취한 감동의 춤판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이제 권리찾기유니온의 목표인 ‘당사자 직접행동’의 길이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활동가, 문화예술가, 조직 노동자, 용기 낸 당사자들의 후원과 연대와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땅의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가짜 사업소득자로 둔갑된 노동자들이 떨쳐 일어나 모두의 권리 찾기에 나서는 날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닙니다. 더 많은 용기가 모이도록 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겠습니다.
'징검다리 미술가게'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이곳에는 작품만 모이는 게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정과 이웃에도 넘쳐나는 배제된 당사자들이 앞 다투어 권리 찾기의 용기를 내게 하는 권유의 장이 되고, 더 담대한 저항이 뭉치는 조직의 장이 될 것입니다. '징검다리 미술가게'의 낮은 문턱마저 닳고 닳아 그 문밖으로 노동자의 희망이 흘러넘치길 소망합니다. 현대판 노비문서를 불살라 버리는 그날까지 말입니다.